남성복

고리의 구성은 길, 소매, 깃, 동정, 고름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이 저고리의 기본형제이다. 저고리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변하여 왔는데 감, 재봉법, 모양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홑, 겹, 솜, 누비저고리는 감이나 재봉법에 따른 명칭이다.
남자의 바지는 가랑이가 나누어져 있는 형태의 하의로, 상고시대 이래로 남녀 공통의 복식이었다. 남자바지로는 홑바지, 겹바지, 솜바지, 누비바지가 있었고, 여자도 말을 탈 때에는 말군을 착용하였으며, 악공복으로 버선 달린 대구고가 있었다. 남자바지는 조선시대를 통하여 볼 때 통과 사폭의 변화 외에는 큰 변화가 없다. 현재 남자바지는 마루폭, 큰사폭, 작은사폭, 허리말기로 구성되며, 허리는 허리띠로 바지부리는 대님으로 매어서 입는다.
마고자는 1887년 흥선대원군이 청나라의 유폐에서 풀려 돌아올 때 입고 온 만주사람의 마괘가 변하여 입게 된 옷으로 옷깃이 달리지 않고, 목둘레 만큼만 파이고 섶이 덮이지 않고 마주 대어지며, 중앙선에 단추가 달리고, 옆트임이 있고, 엉덩이까지 오는 길이이다. 소매길이는 손목정도의 길이이며 배래는 직선이다. 이러한 괘가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는 저고리 위에 덧입게 되었고, 어느 때부터인지는 모르나 모양도 저고리 모양과 비슷하게 변하였다.
조선 말기에 도포·창의 등의 제도가 없어지고 일반 사서인이 착용하기 시작하여 오늘날 입혀지고 있는 포제를 말한다.소매는 좁고 직령교임식이며 양 옆에 무를 달아 옆을 막아 두루마기란 ‘두루 막혔다’는 뜻이다. 1895년 을미개혁에서는 관과 민이 동일한 흑색두루마기를 착용하게 하여 두루마기 일색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예복의 개념에 두루마기가 들어가고 준용되어왔음을 본다. 요즈음은 차츰 이 두루마기를 벗고 마고자를 입는 경향이 있기는 하나 다시 복고풍이 일어 우리 한복에 두루마기를 갖추려는 흐름이 엿보인다.
조선 중기 이후 많이 착용하였으며, 관리들도 관청에 나아갈 때를 제외하고 사사로이 외출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착용하였다. 일이 많았다. 도포의 깃·섶·고름은 요즈음 두루마기와 같은 형태인데, 그 넓이가 매우 넓고 소매는 넓은 두리소매이고 품도 넓으며 길이도 길어서 발목까지 미친다.또 뒷자락은 두 겹으로 되어 있고 뒷중심이 터져 있으며, 그 위에 전삼이 한 겹 더 붙어 있어 터진 곳을 가려준다.
전삼은 말을 타고 앉았을 때 하의가 보이지 않게 가려주는 구실과, 이를 들고 앉아 뒤가 구겨지는 것을 방지하는 구실을 하였다.도포의 색은 청색·백색의 두 가지가 있는데 경사로운 일에는 청색, 일상시에는 백색을 착용하였다.
유생들은 흑혜·운혜·마혜 등을 신거나 분투혜를 신었다. 도포는 조선 말기 1884년(고종 21)의 의복제도 변경 때에 다른 소매 넓은 의복과 함께 폐지되었으며 두루마기로 대신하게 되었다.
철릭의 기본형태는 상의와 주름잡은 치마를 허리 부근에서 연결시킨 직령교임(곧은 깃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교차시켜서 여민 형태)의 특수형태이다.
초기의 것은 소매통이 좁고, 상의와 하의의 길이의 비율이 1 : 1이며, 오른쪽 깊숙한 곳에 두쌍의 고름(매듭 단추를 사용한 것도 있다.)으로 여몄다.조선 말엽에는 소매 끝이 직사각형으로 각이 지고, 비율도 1 : 2로 증가하여 땅에 끌릴 정도의 대단히 넓은 소매가 되었다. 또 그 중에는 융복으로서의 기능을 고려하여 한쪽 소매를 매듭단추로 연결시켜 떼었다 붙였다 하게 만든 것이 있다.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융복으로 정착하여 상하의 구별없이 두루 쓰였고, 특히 난중에는 공복의 구실까지 하였다.